마을 소식 나눔/즐거운잔치

우리는 마을에서 이렇게 혼인했습니다 - <왁자지껄 뚱딴지 혼인잔치>

없이있는마을 2021. 5. 15. 09:00

봄꽃이 휘날리는 4월의 아름다운 봄날, 상원과 채진의 혼인잔치가 열렸습니다.

마을의 첫 혼인잔치였기에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다렸어요

흙먼지 날리는 마을 운동장이지만 지체들이 하나하나 정성들여 꾸민 곳에서

손님들을 위해 다함께 손수 준비한 식사와 함께

소박하지만 정말 아름답고 흥겨웠던 그날의 모습입니다.

'채진 상원 걸어온 길' 사진전과 마을 소개
잔치 이모저모 풍경
가족들, 지체들, 이웃들 앞에서 고백문 낭독하는 상원, 채진
다양한 축가, 축무가 어우러진 축하 한마당

 

상원의 고백문

우와, 드디어 일주일 남았다!

이제 정말 며칠 안 남았구먼.

어라? 우리 내일 모레 혼인 맞아?

아아. 내일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음…오늘 마을에서 누가 혼인한다는데?

짝궁 채진이랑 한동안 이런 이야기 나눴습니다.

 

맞아요. 혼인이라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게 나한테 현실로 다가오니까 여러가지 감정이 지나갑니다. 관념으로나 살림살이로나 가릴 게 없이 자유분방했지만 이제는 마음대로 해선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마냥 연애만 할 때랑 다르게 내 방식과 채진이 방식이 부딪히면 붙잡고 한참을 싸웠습니다. 혼인 이후를 그려보는 상상 속에서 때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혼인하는 주, 없이있는마을 묵상 본문은 히브리서 4-6장이었습니다. 안식처에 들어가려면 먼저 기쁜 소식을 믿어야 한다는데 생각해보면 기쁜 소식이란 게 이 혼인처럼 당장은 어려운 소식인 것 같습니다. 예수라는 기쁜 소식이 관념으로만 머물 때는 어려울 게 없지만 실제 삶의 현장으로 적용시키면 물건 하나 마음대로 쓰지 못할만큼 어려운 소식입니다.

 

제가 없이있는마을에 처음 왔을 때도 이거 할 거야, 저거 할 거야 기대와 설렘, 욕심이 많았는데 막상 새로운 관계를 일상에서 맞닥뜨리니 굉장히 낯설고 불편하고, 나만 결국 혼자라는 박탈감에 외롭기까지 했어요. 그 시간동안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하고 삽질하고 씨앗을 심고 거두었습니다. 흙에서 생명이 나고 자라는 걸 묵묵히 지켜봤어요. 이제 아주 약간은 알 것도 같습니다. 혼인을 하고도 혼인을 믿지 못하면 끝까지 내 방식 고집하고 괴로워하며 살겠죠. 반대로 기쁜 소식을 듣고서 믿고 순종하면 안식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곧 처음 경험하는 여러가지 파도가 밀려올 텐데 때론 무섭고 떨리겠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일은 없습니다. 없이있는마을에서 이 새로운 가족들과 새로운 몸 이루며 살아왔고 또 살아가듯이 채진이와 혼연일체 한 몸이 되어 높은 파도 마저 즐기고 싶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배움이 필요한 것도 아픔이 찾아올 것도. 실제하는 자유는 훈련 뒤에 주어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워야겠지요. 바로 그 자세가 폭풍우 속에서 우리를 건지고 살릴테지요.

 

봄바람에 일렁이는 저기 운길산과 가재밭에서 철에 맞게 쑥쑥 자라나는 앉은뱅이밀, 토종호밀을 바라봅니다. 지나가는 계절을 살아내고 갈무리하며 하루 하루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여름이 오면 뜨겁게 타오르듯 사랑하고 가을이 되면 탐스럽게 열매맺으며 부둥켜 안고 그 흔적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아 언젠가 울긋불긋 낙엽이 되었을 때 한없이 가볍게 내려가렵니다. 어느날 문득 불어온 바람결에 살랑살랑 춤을 추며 기쁘게 겨울로 돌아가렵니다. 그러니 지금은 이 혼인, 내 삶에 고맙게 모시고, 믿고 순종하며 신명나게 하루, 살겠습니다.

 

 

채진의 고백문

코로나로 긴 시간 놀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잔치를 준비하면서 신나는 하루하루 보냈습니다. 2주 전 사순절 기간을 끝으로 없이있는마을 교회는 히브리서 말씀을 읽었습니다. 히브리서를 묵상하며 한 몸 이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하나님 앞에는 아무 피조물도 숨겨진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저에게 한몸살이는 나에게만 갇혀 있던 알을 깨고 나와 자유케 되는 걸음입니다. 저는 고집이 센 사람입니다. 아마 혼인잔치에 자리한 분들 중에 단연 제 동생이 제 고집을 가장 많이 경험했을 텐데요, 어릴 때 저는 착하고 똑똑한 동생이 저보다 뭐든지 잘하는 것이 아주 꼴보기가 싫었습니다. 동생이 다가오면 무시하고 놀아달라고 하면 같이 안 놀고 힘도 약하고 작은 동생이 뭐가 그리 미웠는지 쌍코피를 터트린 적도 있고요. 이 기회를 빌어 용서를 구합니다. 동생이 밉다는 내 생각에만 꽂히면 동생의 생명됨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랬던 제가 한몸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작은 우물 안에 갇혀 있던 개구리가 자유를 맞이하면서 겪은 일들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밝은누리에서 예배 첫날 하염없이 울기만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벌거숭이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지금껏 내가 쌓아둔 모든 것이 하나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보호막은 안전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한 것이었어요. 민낯으로 예수를 만나 나를 해체하는 일을 그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피조물도 숨겨진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납니다.

 

4:14-16

우리에게는 하늘에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지킵시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또 제게 한몸살이는 작은 씨앗이 땅에 심겨 죽고 완전히 새로운 싹으로 다시 살아나는 과정입니다. 켜켜히 쌓여 있던 저의 껍질을 벗기기를 수없이 반복하던 중에 저는 과거에 묶여 있던 채진을 놓아주고 죽음을 향해 뛰어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그만둔 그 주에 히말라야에 갔습니다. 약한 나의 모습이 싫어 수년 간 덮어두고 있었던 마음은 사실 전혀 없어지지 않고 눈덩이처럼 커져만 있더군요. 히말라야를 오르며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오신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쓰다듬어주시던 그 손길을 의지해서 담대히 죽었습니다. 그리고 산을 내려와 한몸살이 친구들과 함께 지평선 위로 새로운 날을 맞이했습니다. 언제나 죽고 다시 새롭게 사는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숨으로 오시는 성령을 맞이합니다. 그 때 상원을 처음 만났습니다. 자신의 팔자를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한 청년이 마음 깊이 들어왔습니다. 이 시대에 여자로 태어난 것이 나에게는 천추의 한이다,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다, 남자들은 이런 여자의 애환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하는 마음을 모두 녹여버린 그를 만났습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홀로 사는 것이 오히려 나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이 존재가 하나님이 뻗으시는 구원의 손길이며, 위로이며, 자비입니다. 주께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걷어차지 않고 넙쭉 받습니다. 이 신앙을 굳게 지킬 수 있도록 이 고백을 모두 기억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12-13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여러분은 조심하십시오. 오늘이라고 하는 그날그날,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위대한 것들은 이미 다 들었고 보았습니다. 결국 다시 일상입니다. 높은 히말라야 산맥에서 온 몸과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압도감에 사로잡혔더라도 내려와서 다시 지극한 일상입니다. 걸레질에, 설거지에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내 옆의 이 한 사람, 내 옆의 이 예수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위대하고 거대한 것을 말한다한들 내 앞의 존재와 함께 살아갈 이해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는 무지렁이 백성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지금 이 길을 가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하고 너무나도 풍족합니다. 집 한채, 번듯한 직장도 없는 30대 중반의 청년이라지만 모자랄 것이 하나 없습니다. 다만 내 옆의 예수를 모시고 오늘 이 한 날의 천국을 누리며 살겠습니다.

 

뚱딴지 독립선언문

1

고맙습니다. 참 은혜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건 부모님 덕분입니다.

우리를 기른 존재는 모두 우리 부모입니다.

여기 계신 엄마 아빠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 속 사건이 되고 계기가 된 기억들!

당신께서 주는 젖 힘껏 빨아 먹고 이렇게 자랐습니다.

친절했든 못됐든 재미있었든 지루했든

정 들었든 꼴보기 싫든 설렜든 무서웠든

이제껏 나를 낳고 기른 당신 우리가 여기 오기까지 낳고 기른 사건들을 기억합니다.

 

2

내 엄마 아빠, 김정남 이갑수 내 엄마 아빠, 정미의 김교준

어릴 적 학교 선생님, 동무들, 그 기억들 짝사랑하며 끝없이 펼치던 상상의 나래

번개전사 슈퍼 그랑죠, 축구왕 슛돌이의 독수리슛, 주공912동 706호 작은 연못 담장을 뛰어 넘던 천사소녀 네티, 가을동화 '은서야', 첫사랑 박진수가 보낸 네이트온 쪽지, 페이스북 좋아요

한달 여행 끝에 겨우 잡은 생선 한 마리로 만든 어죽의 밍밍함 제주도에서 태풍 맞으며 던진 낚시대

메빅 벌교 캠프에서 흘린 땀과 눈물, 너무 무서워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그날 교통사고, 신병2대대 배중사 네 이놈! 군위 교회 십자가 네온 사인, 지금 이 길을 걷게 만든 SFC와 밝은누리 동지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내 엄마가 되어주고 / 내 아빠가 되어준

우리 인생 속 여러 사건들이여! 기억들이여! 고맙습니다.

 

세어보니 부모가 참 많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났더니 아주 끝장을 보자 합니다.

 

3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마음이 불편해도 때가 되면 해야 할 것이 있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머무르거나 안주하지 말고 길을 떠나라.)

나는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지금까지 만난 부모는 이제 그만 놓아 주어라. 고이 보내드려라.)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러는 게 당연하다, 라는 익숙한 생각이 바로 자기 원수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더이상 그 부모가 널 살리는 게 아니다. 과거의 사건들에 얽매여서 오늘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를 규정하는 사람은 참된 자유를 느낄 자격이 없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또 망설이느냐! 너는 스스로 이미 온전하다. 이제 그만 네 과거를 십자가로 들고 따라 와라.)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삶과 죽음을 뛰어 넘어 없이 있는 이들이여! 독립을 선언하고 길을 떠나라.)

 

4

젖 준 부모를 등지고 떠날 때, 그 전에 누리던 평화가 깨집니다. 칼처럼 차갑고 외로운 날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만나는 길이고 나를 깨닫는 길이고 나를 온전히 세우는, 마땅한 길이니 이제 젖은 안 먹을게요.

딱딱한 음식이든 달콤한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꼭꼭 씹어 먹겠습니다.

이 인생길 기쁘게 짊어지겠습니다.

 

5

그러니 그랑죠, 슛돌이, 안녕

네티, 은서야, 안녕.

졸업식날 끝없이 내리던 눈, 페마 중창단, 메빅 댄싱머신, 추석 가출사건, 안녕.

부둣가 몰아치던 바람, North Gwinnett 오케스트라, Anderson Cooper 기자의 '전쟁의 끝에 내가 있다', 안녕.

신병2대대 배중사놈, 폴바셋 우유아이스크림, 흙사랑 상철이형 안녕.

마음의 고향 군위, SFC, 나들목교회, 에어비앤비, 밝은누리도 모두 안녕!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내가 알던 채진 상원도 안녕!

 

6

고맙습니다. 즐겁고 좋은 기억, 쓰리고 아픈 기억 그 모두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우리는 이제 독립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한몸으로 다시 태어나 새롭게 삽니다.

 

채진 상원 그리고 우리 모두,

독립 만세

흥겹고 아름다웠던 마을 혼인 잔치 영상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어요 :)

(https://www.youtube.com/watch?v=335-a5q0zQ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