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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소식 나눔/마을소식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서울살이 10년 차, 서울을 떠났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학업을 위해 상경하고서는 졸업 후에도 생업에 몰두하며 내가 이렇게 서울에서 오래 살(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그분의 사랑은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인연을 통해 또렷이 아로새겨졌다.

 

 

10년 전 반주자로 출석하던 교회에서 만난 목사님, 청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배웠다. 그 시간이 부담스럽기도, 즐겁기도 해서 함께 배운 이들이 한몸살이 교회 공동체로 살겠노라 떠났을 땐 그저 아쉽고 슬펐다. 먼 훗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내 길이 아니라 생각했다. 이후에 나도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 반주자로 자리를 옮겼지만 한몸살이하는 지체들과 꾸준히 관계 맺으며 기독청년아카데미와 KSCF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그리고 공동체지도력훈련에서 동일한 배움 이어나갔다. 그 굵직한 배움들이 삶에 균열을 내며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을 뛰어넘어 받은 사랑에 응답하기로 결심했을 때에서야 한몸살이 교회공동체로 살기로 뜻을 정했다. 때론 게으르게 고민하면서, 끊임없이 먹고 사는 문제에 매몰되면서, 나의 고민이 유보되고 퇴보되는 것이 들킬까봐 눈치를 보면서, 나는 할 만큼 하고 있다고 위안하면서, 나 하나 무탈히 살고자 하는 게 나쁜 건 아니라고 기만하면서, 결국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체념하기도 하면서 10년간 돌다리가 깨부숴질 때까지 두드렸던 나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해준 것은 함께 이 길 걷는 벗들을 통해 비추어지고 드러난 그분의 사랑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송촌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마을 교회 지체들의 아낌없는 도움 받았다. 학업으로 이곳저곳 이사하는 생활에 지쳐 직전에 살던 예술인주택에 뼈를 묻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사를 하려니 앞이 캄캄했다. 게다가 K 장녀로 30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내 문제로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참 어려웠다.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그 마음이 지체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질척대야 한다(?)는 여러 지체의 권면을 듣고 용기를 내어 마을에 도움을 구했다. 지체들은 서울집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던 나 없이 모여서 입주 청소를 하고, 이사 당일에는 서울로 와서 짐을 옮긴 뒤 나를 태워 송촌으로 함께 갔다. 쌓여있는 짐과 가구들 앞에서 막막했을 때 같이 정리하고 종량제봉투에서부터 먹거리를 가져다주고, 가구를 조립하고 근처 마트로 데려가 장을 보러 가는 등 내가 생각지도 못한 여러 부분들을 살펴주었다. 1만큼 도움받으면 1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상식에 의지해 초반에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계산을 하며 이 부채감을 해결하고픈 마음 있었는데, 원체 셈이 밝지 못한 터라 함께 살면서 천천히 갚아나가기로 했다. 많이 사랑받았으니 많이 사랑하자며.

 

 

한편, 이사 전후로 정리되지 못한 환경이 어려워 신속하게 이 상황을 해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을 밥상과 기도회, 그리고 6월 말에 예수원으로 다녀온 자매수도여행 덕분이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나, 어떤 부르심 따라 이들과 함께 있나, 기도하고 되새기면서 분주하고 지친 기운들 환기할 수 있었다. 그저 물리적 환경이 바뀌고 몸만 옮겨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명 받아 사는 삶이 곧 이사라는 것 떠올리며 정리되고 쾌적한 주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편, 좋은 몫을 잃지 않아야 함을 되새겼다.

 

 

송촌에서 한몸살이 3개월이 되어간다. 오랫동안 내 안에 고여있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그분의 사랑 온전히 누리며 잘 뿌리내리겠다는 마음 담아 새 터전의 이름을 맑은샘터라고 지었다. 그사이에 다른 지체들의 이사도 있었다. 기쁘고 고마운 일이다. 생명을 종노릇하게 만드는 애굽의 질서에서 탈주하여 예수의 한 몸으로 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모이고 만나 새로운 전환과 배치를 생성해나가는 생명 사건이기에 다 함께 경축할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고되고 막막한 일이라고 한들 지체들과 모여 노동하면 어느새 놀이가 되고, 잔치가 된다. 서울을 떠나는 두려움,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삶을 배우는 두려움, 부족할까 실패할까 불안한 두려움, 그 숱한 두려움을 지체들과 마주하면 아무런 실체 없는 허상임을 알게 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 함께여서 괴롭고 힘든 일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일 많을 것 알기에 고맙게, 그리고 신명 나게 이 길 가련다.

 

 

-은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