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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소식 나눔/키움과살림

마지막 쌀 한 톨까지 고맙게

온 생명 어우러져 서로 살리는 삶을 위해, 없이있는마을에서는 기계 없이 손으로 밭농사와 논농사 지어가고 있다. 특히 땅강아지논이라 이름 붙인 우리의 논은 물이 잘 고이지 않아 빗물을 받아써야 하는 딱딱한 땅이다. 그래서 공동체가 함께 품을 들이지 않으면 손농사가 불가능하다.

 

6월 모심기를 준비하며 새벽마다 논을 갈아엎는 울력이 있었다. 나는 당시 서울에서 살고 있어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 울력에 참여했던 한 지체가 진짜 힘들긴 했다며 자작곡 노랫말로 남길 정도였다.

 

“태어나 처음 해본 하늘땅살이, 아이쿠! 어지러워 나 집에 갈래~”
(물론 이렇게 끝나지 않고 의미있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노래가 궁금한가? 마을 놀러오면 불러주겠다.ㅎㅎ)

 

6월의 어느날, 마을 사람들이 땀 흘려 준비해둔 땅강아지논에 태어나 처음 모 심으러 갔다. 이 논은 비가 오지 않으면 딱딱해져 모를 심기가 어렵다 보니, 다같이 “비를 내려주소서!” 염원했는데, 이게 무슨일인가, 놀랍게도 진짜 비가 내렸다. 바깥 노동할 때 비가 오는 것이 이렇게 반갑고 기쁜 일일 줄은 몰랐다. 알맞은 때에 비 내려주는 자연에게 참 고마웠다. 질펀한 흙을 거부하지 않고 속으로 풍덩 들어가 손으로 한 땀 한 땀 모 심었다. 이때 우비를 입고 해맑게 모를 심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 그 사진을 반년동안 카톡 프로필로 올려두기도 했다.

비가 와서 더 기뻤던 모심기(좌) / 카톡 프로필이었던 모심는 모습(우)

 

무더운 여름을 견디고 난 10월, 알곡들이 여물어 벼가 고개를 숙였다. 고라니, 멧돼지, 참새들이 벼를 너무 잘 나눠 먹은 탓에 수확량이 많지 않았지만 뭐 어떤가? 이 거저주신 자연, 온생명과 함께 나누는 것임을 느꼈다. 벼베기 잔치에는 친한 언니들을 초대해 웃음꽃 피우며 노동했고, 직접 만든 아궁이에 끓인 소고기뭇국과 전을 먹으며 신명나는 잔치 벌였다. 다 함께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은 어느새 이웃들을 초대하는 마을의 잔치로 이어졌다.

이웃들 초대한 벼베기 잔치

 

잔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주 동안 햇볕에 잘 말린 벼를 비가 오지 않을 때 얼른 탈곡해야 한다. 탈곡 또한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다.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도구를 이용해 손으로 해나간다. 와롱와롱 소리내며 와롱이를 밟고, 볏단을 쓰윽쓰윽 비질하며, 예리한 감각으로 바람 찾아다니고, 숨 크게 후후 불어 알곡을 정성껏 골라냈다. 이렇게 밥에 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몸으로 깨우치니 쌀 한 톨이 아주 귀하다. 이삭 줍는 여인이 된 것처럼 떨어진 마지막 알곡까지 간절히 주웠다.

 

탈곡한 쌀로 그 자리에서 아궁이에 밥 지어먹었다. 새파란 하늘과 녹음 짙은 나무들 사이에서 온 세상 온 가족 하느님 깃든 햇밥 먹으며, ‘우리도 밥으로 서로 살리며 살자’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렇게 올 한해 논농사를 갈무리했다.

 

우리의 논농사는 온 생명이 어울리는 삶을 구현하고 전하는 살림 운동이다. 사업적 목적이나 쌀 자급자족이 목표가 아니다 보니, 남들이 보면 소꿉놀이 수준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그 소꿉놀이라는 평가가 오히려 좋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생기 잃어가며 아득바득 버티지 말고, 모두들 한적한 시골에서 소꿉놀이하듯 즐겁게 살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우리가 그런 삶을 실제로 보여주고, 함께 사는 삶으로 이 땅의 청년들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나도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기계가 아닌 키질과 홀태, 와롱이(탈곡기)로 직접 한알 한알 털어낸 귀한 쌀알들

 

“마지막 쌀 한 톨까지 고맙게, 겸손하게 먹으며 밥으로서 하나되어 살겠습니다.”

 

이 기도문은 마을 밥상 기도에서 매번 읊조리던 것이지만, 지금은 내게 진심 깃든 기도가 되었다. 나와 우리를 살려주는 밥 고맙게 먹고, 밥이 되어 곁 생명들을 살리는 삶. 이 ‘생명 순환 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