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가 자란다 (2020년 7-8월)
쇠머리지장이 조금 남아서 못자리에 그대로 둔 것 말곤 다들 자리를 잡고 뿌리를 뻗기 시작했다. 주춤거릴 새도 없이 왕성히 자란다. 논이고 밭이고 숲이고 들이고 할 것 없이 생명력이 최고조에 다다르는 시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벽 공기 마시며 얼 깨우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땀 뻘뻘 흘리고 정성껏 차린 밥 맛있게 먹고 벗 만나 님 만나 가슴 뛰게 사랑하고 늘어지게 하품하면서 곤히 잠드는, 그야말로 살아가는 힘 가득한 때다. 하루하루 신나게 지내니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이 지나간다.
무너진 논둑 (2020년 8월 6일)
땅강아지논은 빕새울 골짜기 다락논 여섯 칸 중에 가장 아래 두 칸이다. 윗자리는 땅 주인도 다르고 지금은 버드나무가 무성하니 방치된 늪지다. 한창 가물 때 천수답 상태를 보완하기 위해서 거기에 물길을 냈다. 콸콸은 아니어도 늪 중간 중간 고인 물 끌어오는 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어 그나마 작은 해갈이라도 되었다. 다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실수가, 꽤나 커다란 실수가 있다는 걸 일이 다 벌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자 그 물길로 빗물이 몰렸고 결국 논둑 한 쪽이 무너지고 만 거다.
김매기 (2020년 8월)
봄에는 비가 너무 안 오고 여름에는 비가 너무 오고. 날씨가 점점 양극화되는 것 같다. 비가 멈추지 않으니 논둑은 쌓아도 쌓아도 계속 무너졌다. 거기에 신경이 쏠리는 사이 벼 사이에서 다른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타감작용은 이런 환경에서 적용되지 않는 걸까? 눈 깜짝할 사이 벼 만큼 자라서 이제 논둑은 두고 풀부터 뽑아주려는데 구분이 안 되는 게 함정. 이것은 과연 벼일까, 피일까? 정답! 피! 꼭 자신 있게 뽑고 나서 자세히 보면 볍씨가 매달려 있더라.
가을 (2020년 9월)
길고 긴 장마가 끝나고 찾아온 가을 날씨가 정말 상쾌하다. 논에 가서 보는 풍경마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얀 벼꽃, 주렁주렁 달린 이삭을 넋 놓고 본다. 빠른 것은 벌써 분홍빛 까락 내밀었다. 이렇게 공부 안 하고 이렇게 얼렁뚱땅 많은 이삭을 얻어도 되는 거니? 이 볍씨가 과연 자랄까, 여기가 논이 될까, 이제 의심할 이유가 없다. 논둑에 철푸덕 앉아 멍하니 보고만 있어도 이미 배부르다.
'이제 추수 때까지 초읽기다.'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불청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버려뒀는데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는 심각한 피해로 느껴졌다. 논이 망가지는 게 이렇게 순식간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분명 토실토실한 알곡이 가득했는데... 벼가 완전히 익으려면 더 기다려야 하니까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얼쑤 신나게 ‘논’다 #6>에서 계속...
2021.02.04 / 글쓴이 생똥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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