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을 소식 나눔/키움과살림

얼쑤 신나게 ‘논’다(5)

 

7 월 중순 ,  벼 구경하러 놀러온 청개구리

벼가 자란다 (2020년 7-8월)

쇠머리지장이 조금 남아서 못자리에 그대로 둔 것 말곤 다들 자리를 잡고 뿌리를 뻗기 시작했다. 주춤거릴 새도 없이 왕성히 자란다. 논이고 밭이고 숲이고 들이고 할 것 없이 생명력이 최고조에 다다르는 시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벽 공기 마시며 얼 깨우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땀 뻘뻘 흘리고 정성껏 차린 밥 맛있게 먹고 벗 만나 님 만나 가슴 뛰게 사랑하고 늘어지게 하품하면서 곤히 잠드는, 그야말로 살아가는 힘 가득한 때다. 하루하루 신나게 지내니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이 지나간다.

 

7월 15일, 땅강아지논 윗층. 가운데에서 개성 뽐내는 붉은차나락)
7월 15일, 어린 벼는 생김새만으로 종류를 구분하기 힘들다)
7월 24일, 홍일점 붉은차나락
7월 24일, 윗층. 왼쪽부터 비단찰벼, 붉은차나락, 메산디. 갑자기 화질이 안 좋아졌다
7월 24일, 아랫층. 왼쪽부터 쇠머리지장, 보리벼, 비단찰벼
8 월  2 일 ,  아랫층 .  비가 제법 온다
8월 2일, 벼가 꽤 깊게 잠겼다. 분얼도 왕성하게 일어나는 듯?

무너진 논둑 (2020년 8월 6일)

땅강아지논은 빕새울 골짜기 다락논 여섯 칸 중에 가장 아래 두 칸이다. 윗자리는 땅 주인도 다르고 지금은 버드나무가 무성하니 방치된 늪지다. 한창 가물 때 천수답 상태를 보완하기 위해서 거기에 물길을 냈다. 콸콸은 아니어도 늪 중간 중간 고인 물 끌어오는 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어 그나마 작은 해갈이라도 되었다. 다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실수가, 꽤나 커다란 실수가 있다는 걸 일이 다 벌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자 그 물길로 빗물이 몰렸고 결국 논둑 한 쪽이 무너지고 만 거다.

 

쓸려 내려온 흙과 돌로 주변이 엉망이 되었다
한참동안 비 맞아가며 물길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안 되더라. 그야말로 속수무책
갑자기 물이 불어나니 윗층 아랫층 할 거 없이 다 넘치고 터지고 난리가 났다

김매기 (2020년 8월)

봄에는 비가 너무 안 오고 여름에는 비가 너무 오고. 날씨가 점점 양극화되는 것 같다. 비가 멈추지 않으니 논둑은 쌓아도 쌓아도 계속 무너졌다. 거기에 신경이 쏠리는 사이 벼 사이에서 다른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타감작용은 이런 환경에서 적용되지 않는 걸까? 눈 깜짝할 사이 벼 만큼 자라서 이제 논둑은 두고 풀부터 뽑아주려는데 구분이 안 되는 게 함정. 이것은 과연 벼일까, 피일까? 정답! 피! 꼭 자신 있게 뽑고 나서 자세히 보면 볍씨가 매달려 있더라.

 

8월 12일, 눈 깜짝할 사이에 풀밭이 아니 풀논이 되어버렸다
8월 12일, 어머, 벗님! 혹시 벼 뽑은 거 아니야?
8월 12일, 온도가 높아서 그런가? 점점 연못처럼 되고 있다
8월 24일, 쑥쑥 자라나는 키
8월 24일, 메산디 어린 이삭 나오는 모습. 허물을 벗고 나오는 곤충같다

가을 (2020년 9월)

길고 긴 장마가 끝나고 찾아온 가을 날씨가 정말 상쾌하다. 논에 가서 보는 풍경마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얀 벼꽃, 주렁주렁 달린 이삭을 넋 놓고 본다. 빠른 것은 벌써 분홍빛 까락 내밀었다. 이렇게 공부 안 하고 이렇게 얼렁뚱땅 많은 이삭을 얻어도 되는 거니? 이 볍씨가 과연 자랄까, 여기가 논이 될까, 이제 의심할 이유가 없다. 논둑에 철푸덕 앉아 멍하니 보고만 있어도 이미 배부르다.

 

천고벼비의 계절, 가을!
9월 4일, 붉은차나락이 선명하게 경계 나눈다
9월 4일, 벼꽃과 꿀벌
9월 4일, 메산디. 밭벼 출신이어서 그런지 다른 벼보다 빠르게 이삭 팬다
9월 4일, 메산디. 까락이 길고 뾰족하다
9월 4일, 붉은차나락과 비단찰벼 꽃 피었다

 

9월 4일, 보리벼
9월 4일, 쇠머리지장. 까락이 길고 흰 색이라던데 어찌 된 일인지 좀 다르게 생겼다. 아직 어려서 그럴지도?
9월 10일, 그새 조금 누렇게 변한 것 같다
9월 10일, 알이 차오르는 붉은차나락. 어릴 때는 보라빛이 선명했지만 점점 초록빛이 섞인다
9월 17일, 비단찰벼. 그나저나 너는 왜 이름이 비단이니?
9월 26일, 땅강아지논 윗칸. 벼들이 고개를 숙였다
9월 26일, 땅강아지논 아랫칸. 수확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추수 때까지 초읽기다.'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불청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버려뒀는데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는 심각한 피해로 느껴졌다. 논이 망가지는 게 이렇게 순식간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분명 토실토실한 알곡이 가득했는데... 벼가 완전히 익으려면 더 기다려야 하니까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얼쑤 신나게 ‘논’다 #6>에서 계속...

 

논을 망친 범인은 온 논에 발자국을 남겼다

2021.02.04 / 글쓴이 생똥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