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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소식 나눔/키움과살림

땅 밖으로 고개를 내민 냉이 - 그렇게 봄이 온다

“그렇게 봄이 온다” - 생명력 넘치는 봄의 기운이 내 안에 들어오는 거 같다.

 

새해를 맞이하며 몸 건강을 잘 지키는 것과 마음 건강을 잘 지키는 것을 한 해의 다짐으로 삼아보았다. 분명 몇 년 전 까진 먹는 것에 신경 쓰고 몸을 살피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모두가 그렇듯 내면보다 눈에 보이는 외면을 신경 쓰기에 바빴다. 내면을 바라보게 된 첫 시작은 결혼을 하고 신혼 때 친구 부부의 추천으로 ‘먹거리 교육’을 함께 들은 것이었다.

마을살이를 준비하던 시절, '청미래'에서 다함께 먹거리 교육을 듣는 중

두 번 정도의 수업을 들은 후, 강사님이 직접 차려주신 갓 도정해서 지은 밥과 반찬들을 먹으며 “이렇게 맛있는 밥이?” “특별한 메뉴가 아니어도 이렇게 소박하고 멋지게 음식을 차려먹을 수 있구나..” 탄성을 질렀었다. 한식 위주의 식단이었는데 정말 맛있고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내 일상에서 진짜 먹거리가 바뀌기까진 그 후로 2-3년의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생활이 바뀌기엔 공부 이외 더 큰 계기들과 그 이상의 수고로움이나 정성, 습관화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 한 가지 계기는 면역에 의한 피부질환 때문이었다. 밀가루, 육류, 우유, 스트레스 등에 반응한다는 이 질환은 여전히 나와 상생하고 있다. 7년 전 젊음과 열정으로 열심히 일하며 홀로 독립하며 살 때 생겼는데, 아무래도 엄마 품에서 먹던 집 밥을 덜먹기 시작한 후로 면역이 떨어지며 그랬던 것 같다. (그때부터 모든 몸살과 피곤함은 다 장염으로 왔다)

그 후, 임신을 하고 출산하며 먹거리에 대한 생각은 더 많이 바뀌게 되었다. 그간 내 먹는 것만 생각하면 됐었는데 이젠 아이가 먹을 걸 생각해야 하니 어떤 것을 주어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제야 시작한 것이 먹거리 교육에서 배웠던 현미를 먹고, 유기농 1차 농산물을 조리해서 밥상에 올리게 된 것이다.

‘먹거리’는 정말 중요했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들로 직접 요리를 해 먹었을 때와 바깥에서 쉽게 외식을 할 때의 몸의 반응은 달랐다. 피부질환은 바깥음식에 격렬히 반응했다. 입은 즐겁지만 몸은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쉽게 먹은 음식은 쉽게 생각한다.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차릴 때면 마음이 달랐다. 가족을 위한 밥상을 차릴 때면 몸은 조금 피곤해도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예쁜 옷 한 벌, 운동화 한 켤레, 가방을 살 때면 엄청 고심해서 제일 예쁘고 좋은 걸 살려고 하면서 식재료나 가공식품은 왜 이리 가성비를 따져서 사게 되는지.. 먹는 것에 대한 가벼움이 여실히 드러났다.

생활 가운데 먹거리를 신경 쓴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얼었던 냇물이 녹고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봄이 온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입춘’이 봄의 시작이라지만 ‘경칩’이 지나야 내가 사는 마을에선 냉이를 캘 수 있다. 냉이는 밭에 심지 않아도 거저 자란다. 겨울을 온전히 이겨낸 냉이는 조금 보랏빛이 도는 어두운색부터 초록 빛나는 푸른 것까지 다양하다. 호미 하나 들고 아이와 밭에 가서 조심조심 뿌리가 끊어지지 않게 냉이를 캔다. 봄나물들은 겨울의 추위를 땅속에서 온전히 이겨낸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꼭 뿌리를 먹어야 한다.

길고 긴 겨울을 보낸 땅에서 '냉이'가 나오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매일매일 한웅큼씩 캐도 늘 넘쳐나는 '냉이'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 낸 국물에 깨끗이 씻은 냉이를 넣는다. 집 된장 크게 두 숟갈, 다진 마늘 조금 넣고 양파랑 버섯도 조금 곁들여 끓이다 보면 네모 반듯 자른 두부를 넣을 때가 온다. 두부 넣고 보글보글 한 번 더 끓이면 봄 내음 가득한 냉이 된장국이 완성된다. 뜨끈한 국물과 냉이를 함께 먹으면 혹독한 겨울 버틴 생명력 넘치는 봄의 기운이 내 안에 들어오는 거 같다.

냉이, 버섯, 감자, 양파, 두부 넣고 보글보글 냉이 된장국 완성

2021.03.27 / 글쓴이 서로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