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핀 진달래와 민들레, 지난 겨울 없이있는마을 민들레학교 체육시간의 제목이다. 햇수로 4년 째 민들레학교에서 체육을 담당하여 마을 민들레, 진달래 학생들의 팔과 다리를 힘차게 휘젓고 있다. 23년 여름 풋살을 시작하고 23년을 지나 24년을 맞이하는 추운 겨울 동안에는 나도 경험한 적 없는 동네 산을 올랐다. 민들레학교 체육시간은 아이들만을 위한 시간이 아님을 수차례 나누었었다. 학생들에게는 즐거운 체력단련의 시간이며 나에게는 설레는 도전의 시간이다. 민들레학교에는 이제 초등 6학년인 음, 율이라는 친구들이 있는데 약 2년 전부터 축구사랑에 깊이 빠져있다. 이들에게는 ‘축구를 잘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다면 뭐든 의욕적으로 나선다. 초, 중등 과정의 아이들에게 등산을 심지어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고, 눈과 어름으로 덮힌 산을 오르자고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축구를 잘 하기 위해서는 허벅지 근육과 긴 시간 운동할 수 있는 체력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겨울 등산만한 운동이 없어!!”라는 이야기에 이들은 당장에 네팔행 비행기 티켓을 끊기라도 할 것처럼 의욕이 충만해보였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 덕에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음, 율 기운으로 산에 오르기 위한 거창한(?) 설명은 더이상 필요없어졌다. 아이들의 의욕은 기운으로 나타나며 그 기운은 모두에게 전해진다. 이제 문제는 나다. 산을 즐기지도 않고, 대단한 요령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날 등산을 했던 손에 꼽는 경험 중 한 번은 이랬다. 약 15년 전 쯤 하남시에 있는 검단산이 등산에 입문하는 이들에게도 적합하다길래 녹음이 짙은 한 여름 500ml 생수 한 통 없이 산에 올랐다. 어찌 그렇게 무모했는가 하면 내 뒷주머니에는 ‘신용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을 위해 음료, 두부김치 등 요기 거리를 판매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카드 한 장 달랑 주머니에 놓고 호기롭게 산에 오른 것이다. 산 중턱에서는 목이 마르고 현기증이 와서 쉴 수 있게 마련된 벤치에 누워있는데 하산하시던 어르신께서 오이를 건내셨다. 그게 없었으면 아마 어딘가에 실려서 오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애가 깊게 느껴지는 오이 반 토막을 먹고 정상을 향해 올랐다. “잔뜩 먹을거야, 잔뜩 마실거야!!”하며 신용만으로 돈을 쓸 수 있는 카드만 바라보고 올라갔다. 하하하하하하. 현금만 가능했다. 현금만. 내 신용은 이 순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뒷주머니의 카드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산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산경험이 미천해서 이번 겨울산에 대한 준비가 필요했고 마침 마을에 산사람이 있어 이번 민들레학교 체육시간을 함께 꾸려가자며 부탁을 드렸다. 그 산사람은 형제 료한이었다. 료한은 지리산 종주라는 원대한 꿈을 가슴에 품고사는 이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마을백수인 형제 제민에게도 부탁을 드렸다. 백수라는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지만 흔쾌히 산행에 함께하기로 했다. 약 10년 전 현재 마을에 함께 살고 있는 상원 형제와 자전거를 타고 서울부터 부산까지 간 적이 있다. 닷새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그 사이 별의 별 일이 다 있었다. 타이어가 펑크, 갑자기 쏟아진 막대한 비, 힘겹게 갔더니 길을 잘못들어 한참을 돌아와야만 했던 일 등 많았는데 몸으로 하는 것 중 가장 신경써야할 것은 ‘안전’이라는 배움이 있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오르는게 가장 중요했고 유사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보호자가 필요했다. 료한과 제민이 함께함으로써 유사시를 대비한 인원이 꾸려졌다. 마음이 든든했다. 나만 잘하면 된다.
24년 1월 3일. 산새가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천마산 답사를 시작으로 8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답사에는 민들레학교 아이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첫 답사에는 상민, 료한, 제민, 효은이 참여했는데 다들 눈덮힌 겨울산은 처음이었다. 처음이라는 말에는 서툴러도 괜찮다는 포용의 뜻이 있다 했던가. 호기심과 설레임, 패기와 약간의 걱정을 가지고 산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산을 오르내리는 중에 마주쳤던 등산객들은 우리를 보시고는 염려의 말씀을 전하셨다. “아이구 아이젠 없이 괜찮겠어요? 위에 엄청 미끄러워요. 조심해서 올라들 가요!” 아이젠…? 말로만 들었던 아이젠. 물론 우리는 아이젠이 없었다. 겨울산을 오르기 위해 제대로 갖춘(?)이는 아무도 없었다. 천마산 꼭대기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 30분. 나중에 알게 됐지만 오르고 내리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3시간 정도였더라. 산은 아름다웠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아랫동네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광경을 만났다. 새하얗게 펼쳐진 상고대 세상. 주변은 구름인지 안개인지 알 수 없는 뿌연 기체가 가득했다. 얼마나 올라왔는지 밑에는 뭐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치 구름 위에 올라선 기분이랄까. 고된 답사였지만 모두가 겨울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한 주 뒤에 민들레학교 첫 체육수업을 시작했고, 완만한 코스라 추측하고 계획했던 남한산성으로 떠났다. 남한산성의 짧은 코스들은 민들레학교 친구들과 여러차례 다녀왔기에 큰 걱정이 없었고 그래서 체육시간의 첫 남한산성은 가장 긴 코스인 5코스로 선택하고 갔다. 몸을 푸는 정도로 생각했지만 눈내린 5코스는 만만치 않았다. 동문으로 시작해 북, 서, 남문을 지나 다시 동문으로 오는 코스였는데 총 3시간 30분이 걸렸다. 이는 탐방코스 안내표에 나와있는 예상시간에 비해 10분이 더 걸린 시간이었는데 꽤나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남문에 도착했을 즘 다들 조금은 지쳐있었다. 시간도 3시간 정도 되었고 ‘여기까지만 할까?’하며 망설임이 삐져나오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목표한 곳 까지 갑시다! 여기서 힘들다고 타협하면 나중에 또 타협할 거에요!” 하하하. 여부가 있겠나, 그렇게 우리는 동문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이들이 보여준 체력과 집중력 그리고 힘든 가운데서도 즐거움을 찾으려는 생기는 이 길을 걷는 모두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매주 물날 아침 8시. 민들레학교 등산시간. 누군가에게는 기분좋은 부담이고, 설레임이고, 도전이었다. 그렇게 없이있는마을 근처에 있는 산들을 하나하나 오르며 순항했다. 우리가 오른 산은 남한산성(400m), 운길산(610m) 3회, 예봉산 (683m) 2회, 적갑산(560m) 1회, 검단산(657m) 1회, 천마산(812m) 1회로 약 5,000m를 하늘을 향해 올랐다. 다리에는 어디든 더 힘있게 박차고 오를 수 있는 근육이 생겼고, 심장은 더 크게 호흡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또 당장 산을 올라야 할 때는 힘이 들지만 때로는 혼자서 묵묵하게 때로는 다같이 즐겁게 가다보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에 심겨졌다.
체육시간에는 늘 영상으로 작은 기록을 하곤 한다. 그리고 체육시간이 끝나갈 무렵 두 달간의 소회를 나눈다. 그때 한 친구가 우리에게 전해주듯 했던 소감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뛰다 보면 조금 쉬었다가 다시 걷다 보면 어느샌가 목적지에 도달해 있어요. 한 걸음 한 걸음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산을 오르게 되는 것 같아요. 정상까지. 그게 정말 멋있었던 것 같아요.”
- 상민
<없이있는마을 작은 기록 - 산에 핀 진달래와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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